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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필사본 연구 《洪吉童傳》手抄本研究
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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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日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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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5
閱讀格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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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IS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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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4991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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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는 학계의 통설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그러나 <홍길동전> 작자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의 장은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소설 연구자들은 현재까지 알려진 <홍길동전>의 여러 이본 가운데 허균이 지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허균이 한글소설을 썼을 것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워한다. 이러한 현상의 밑바탕에는 한국문학사를 위해서는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홍길동전> 허균 창작설의 근거는, 1674년에 간행된 이식(李植, 1584~1647)의 『택당집(澤堂集)』에 “허균은 수호전을 흉내 내 홍길동전을 지었다(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는 구절이다. 이식은 뛰어난 문장가로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고, 그의 문집 『택당집』은 조선후기에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조선후기에 『택당집』은 쉽게 볼 수 있는 책이었고 허균도 유명한 인물이었으므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구절은 『택당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어느 누구도 『택당집』의 이 구절을 한글소설 <홍길동전>과 연결시켜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김태준은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소설사’에서 <홍길동전>의 작자 허균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다. 그동안 국문학계에서는 이 글이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한 첫 번째 발언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는 1927년 그의 논문 「조선문학 연구-조선의 소설」에서 『택당집』을 인용하여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선시대 『택당집』을 읽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다카하시는 『택당집』의 ‘洪吉同傳’과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연결시켜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했다. 다카하시가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얘기한 후, 그의 경성제국대학 제자인 김태준, 조윤제, 김사엽 등 1세대 한국문학 연구자들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나갔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홍길동전>의 작자, 주제, 영향관계 등등의 다양한 연구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홍길동전>은 그 형식과 내용이 19세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한글소설이다. 이 한글소설의 작자는 권력이나 양반지식층과는 거리가 먼 무명의 시정인이다. 그리고 이들 무명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즐긴 독자들도 바로 작가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홍길동전>을 허균과 연결시켜 영광스러운 문학사를 서술하고 싶어 했던 1930년대 식민지 지식인의 열정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홍길동전>을 원래 작자와 독자에게 돌려주고, 그들이 얘기하고 싶어 했고 또 얘기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하면서 허균의 생각으로 <홍길동전>을 재단하는 무의미한 일을 더 이상 계속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홍길동전>은 누가 만들었고, 또 어떻게 유통되었나 하는 문제에 대한 정치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필자는 방각본 <홍길동전> 교주본(2014,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을 냈다. 이 책에는 경판 30장본과 완판 36장본의 현대어 교주와 함께 경판본 사이의 축약 양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이본의 내용을 비교한 자료도 실었다. <홍길동전> 방각본은 경판 5종, 완판 2종, 안성판 2종 등으로 현재 9종이 알려져 있는데, 경판본과 안성판본은 모두 경판 30장본과 같은 내용의 이본에서 나온 것이고, 완판본은 36장본이 34장본에 선행한다. 이처럼 방각본 내의 상호관계는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으나, 방각본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아무도 얘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누가 <홍길동전>을 썼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다양한 이본이 만들어졌는가를 알아낼 길이 없다.
방각본 소설의 원고는 어디서 왔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고소설의 작자와 유통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고소설 연구자들이 바라보는 방각본은 한글 고소설뿐이지만, 방각본에는 『남훈태평가』 같은 노래책, 『대동여지도』나 「수선전도」 같은 지도, 『간독정요』나 『사요취선』과 같은 한문 교양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방각본 고소설만이 아닌 방각본 전체를 시야에 넣고 바라보아야 전체적인 방각본의 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방각본 전체상을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게 되면, 방각본은 창작물이 아니라 선행하는 어떤 것을 그대로 옮기거나 축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각본의 일반적 특징은 고소설 방각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방각본 소설은 선행하는 어떤 것을 저본으로 그것을 그대로 옮기거나 또는 축약한 것이다. 이때 ‘선행하는 어떤 것’이란 방각본일 수도 있고 필사본일 수도 있으며, 외국책일 수도 있고 조선 책일 수도 있다. 선행하는 어떤 것이 방각본일 경우는 방각본 이본 사이의 내용비교를 통해 그 계보를 확인할 수 있으나, 방각본이 아닐 경우에는 그 저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본을 조사해야만 한다. 경판 <홍길동전> 가운데 가장 앞선 30장본의 원천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필사본 이본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각본은 상업출판물이고, 출판업자는 이익을 위해서 방각본을 출판한다. 그러므로 방각본 업자가 어떤 책을 출판할 때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익을 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이다. 방각본 업자가 기존에 잘 알려진 것을 번각(飜刻)하거나 축약해서 출판하는 이유는, 유행하는 작품을 간행하면 어느 정도 판매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각본 업자로서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작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18세기 중반부터 한글소설은 세책으로 유행하게 되고, 19세기 전반에 방각본 소설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방각본 소설은 세책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을 축약해서 출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홍길동전>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초에 세책집에서 만들어서 빌려주던 책이 인기를 끌게 되자 다른 세책집에서도 이 책을 베껴서 빌려주고, 또 세책을 축약한 방각본이 간행되자 이 방각본을 번각하거나 축약한 여러 종의 방각본이 나오게 된 것이다. 경판 방각본만이 아니라 완판 방각본도 서울의 세책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다만 완판은 단순한 축약이 아니라 상당한 변이가 이루어져서 개작 수준의 작품이 되었다.
이 책에는 필자가 그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서 발표한 여섯 편의 논문과 네 종의 필사본 이본을 현대어로 옮긴 것을 실었다. 논문의 출처는 아래와 같다.
① 「홍길동전 작자 논의의 계보」, 『열상고전연구』 36집 , 2012
② 「홍길동전 연구의 문제」, 『고소설연구사』(월인, 2002)
③ 「경판 홍길동전 축약의 양상과 그 의미」, 『열상고전연구』 40집 , 2014
④ 「홍길동전 55장본 개작에 대하여」, 『열상고전연구』 13집 , 2000
⑤ 「동양문고본 홍길동전 연구」, 『동방학지』 99집 , 1998
⑥ 「홍길동전 필사본 89장본에 대하여」, 『애산학보』 9집 , 1990
여섯 편의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①은 <홍길동전> 작자를 허균이라고 처음 얘기한 사람이 김태준이 아니라 김태준의 스승인 다카하시 토오루라는 것을 밝힌 글이다. 그리고 식민지시기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의 이 발언이 그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했다. 또 ‘훌륭한’ 한국문학사를 위해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검토하고, 더 이상 이런 식의 <홍길동전>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얘기했다.
②는 기존 <홍길동전> 연구의 문제점을 얘기한 글이다. <홍길동전> 분석이 1930년대 김태준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홍길동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본을 정치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음을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작품 해석이나 허균의 생각을 읽어내는 근거로 이용해온 「서유록발(西遊錄跋)」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는데, 「서유록발」의 텍스트 선정에서부터 해석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가 매우 허술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기존의 <홍길동전> 연구가 정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③은 경판(안성판 포함) 7종의 <홍길동전> 이본의 내용을 비교하여, 이 가운데 가장 앞선 것은 경판 30장본이고, 나머지 6종은 경판 30장본에서 파생된 것임을 밝힌 논문이다. 이 글에서 경판 30장본은 세책(조종업본)을 저본으로 축약한 것임을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홍길동전>의 작자는 세책집과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이며, 세책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을 축약해서 만든 것이 경판 소설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세책집이 고소설의 창작과 유통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④에서 다룬 55장본은 현재까지 필자가 본 30여 종의 <홍길동전> 이본 가운데 가장 특이한 내용을 갖고 있는 이본이다. 55장본의 개작자는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둔 채 여기에 독자들에게 익숙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서 더 재미있는 <홍길동전>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그간 학계의 <홍길동전> 분석은 주로 이념적인 것이었는데, 이러한 작품 해석은 <홍길동전>을 읽던 독자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비단 55장본처럼 그 변이의 폭이 크지 않더라도 현존하는 모든 이본은 각기 내용상의 변이를 갖고 있으므로, 연구자는 이 내용상의 변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논문은 <홍길동전>의 다양한 이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얘기한 것이다.
⑤는 일본 동양문고에 소장된 3권 3책의 필사본 이본을 다룬 글이다. 동양문고에는 1900년 무렵 서울에서 유통되던 세책 약 300여 책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남아 있는 세책 고소설 총량의 반 정도 되는 숫자이다. <홍길동전>도 이 세책 가운데 하나이다. 동양문고본 제2권까지는 경판 30장본과 거의 자구가 일치하는데, 제3권의 율도국 대목은 경판 30장본에 비해 매우 확장되었다. 필자가 이 논문을 쓸 무렵(1998년)에는 아직 세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홍길동전> 연구에서 세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정도에 그쳤다.
⑥은 1980년대까지 경판과 완판에 집중되어 있는 학계의 <홍길동전> 연구의 진부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필사본 가운데 중요한 이본으로 판단한 89장본을 다룬 논문이다. 이 논문을 쓰던 1990년에 필자가 다룬 필사본 이본은 다섯 종에 불과했으므로, 89장본이 경판 30장본에 선행한다는 정도까지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조종업 교수 소장본 세책과 내용 비교를 통해 89장본은 조종업본과 같은 계열임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①과 ②는 기존의 <홍길동전> 연구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점을 밝힌 글이다. 이미 1997년에 간행한 필자의 『홍길동전 연구』에서 이런 문제는 대부분 얘기한 것이지만,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일본인이고, 그 시기가 1927년이라는 사실은 ①에서 처음 얘기한 것이므로 이 책에 실었고, ②는 <홍길동전>과 허균을 연결시켜 논의할 때 연구자들이 인용한 자료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실었다. 나머지③~⑥은 이 책에 실은 네 개의 필사본 이본에 관한 논문이다.
이 책에 실은 네 개의 필사본 이본은 <홍길동전> 이본 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본이다. 네 이본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89장본 : 현재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원문 서비스를 하므로 원문을 볼 수 있다.
㉯ 55장본 : 이 이본도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서 원문 서비스를 한다.
㉰ 동양문고본 : 1911년 서울 사직동 세책집에서 제작한 세책이다. 율도국 대목이 매우 길다는 특징이 있다.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원문을 볼 수 있다.
㉱ 조종업본 : 현재 충남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1, 2권 두 책만 남아 있는데, 전체는 4권 4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양문고본과 마찬가지로 세책본이지만, 동양문고본과는 형식과 내용 모두가 다르다.
조종업본 이외의 나머지 3종은 인터넷을 통해 원본의 이미지를 볼 수 있으므로 원문을 확인하러 소장처를 가야만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조종업본은 아직까지는 인터넷을 통해 원문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충남대학교 도서관을 가야만 원문을 볼 수 있다. 89장본, 55장본, 동양문고본은 각기 작품 전체를 현대어로 옮기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곳에 괄호 안에 한자를 넣고 주석을 붙였고, 조종업본은 앞의 세 이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어역을 제시했다.
조종업본은 경판본의 저본이 된 세책이다. 이 말은 현재 알려진 <홍길동전> 경판 이본은 조종업본과 같은 내용의 세책을 축약해서 만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문 ②에서 자세히 논의했다. 이 책에서는 조종업본과 경판본의 관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조종업본의 전문과 경판 30장본의 해당 부분을 함께 제시했다. 이렇게 두 본을 같이 놓고 보면, 경판본이 세책을 저본으로 축약한 양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근대적인 학문 훈련을 받은 연구자들이 고소설 연구를 시작한 지 80년이 넘었으나, 고소설 연구 초기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 가운데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한글소설은 누가 왜 썼으며, 어떻게 유통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홍길동전>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한다거나, 이미 축약본임이 밝혀진 경판 24장본을 작품 분석의 대본으로 쓰는 연구가 아직도 간간이 보이는 것은 <홍길동전>의 논의가 80년 전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글 고소설의 작자와 유통에 관한 연구는, 세책과 방각본 그리고 활판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소설이 당대 통속문예물이라는 관점을 견지할 때 비로소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글소설의 창작과 유통의 중심에는 세책집이 있다. 세책집에서 소설의 창작이 이루어지고, 이 소설을 빌려주는 영업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소설이 통속문예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 세책으로 독자들의 인기를 끈 작품 가운데 한두 권으로 축약할 수 있는 분량의 작품을 목판본으로 제작한 방각본이 나오면서 비로소 조선의 소설은 인쇄된 형태로 유통되게 된다. 이렇게 서울에서만 제작되고 유통되던 소설이 전주와 안성에서도 방각본으로 간행되면서 소설은 그 영역을 넓혀간다. 20세기 초까지 서울에서는 세책집이 계속 영업을 했고 경판 방각본도 팔리고 있었으나, 새로운 문물인 신문이나 잡지 등의 읽을거리와 신소설이나 여러 가지 전기물이 나타나면서 고소설은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지는 않게 된다. 그러나 전주나 안성에서는 방각본 소설이 계속 간행되었다.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소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활판인쇄로 고소설을 인쇄한 소위 ‘딱지본소설’이 대량으로 싼값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활판본 고소설의 간행으로 비로소 고소설은 전국적인 유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홍길동전>은 이와 같은 고소설의 일반적인 창작과 유통의 경로 속에서 이해해야하는 작품이지 다른 방식의 이해가 필요한 특별한 작품은 아니다. 앞으로 <홍길동전> 연구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고전문학 연구에서 이 작품이 특별히 관심을 끌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이 될 것이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는 고소설 연구 초기의 잘못된 주장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 또한 고소설 연구의 중요한 과제이다.
필자는 1997년에 『홍길동전 연구』(계명대학교 출판부)를 내면서 부록으로 11종의 이본 원문과 두 종의 현대어역 등 전체 13개의 파일을 담은 디스켓을 공개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한 자료가 학계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잘 알려진 경판본과 완판본 이외의 자료를 바탕으로 <홍길동전>에 관한 논문을 쓴 연구자는 아직까지 별로 없는 것 같다. 필자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외의 연구자가 낸 성과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일본 오사카[大阪]시립대학 교수 노자키 미쯔히코[野崎充彦]가 낸 『洪吉童伝』(平凡社, 2010)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미주리대학(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 역사학과 교수 강민수(Minsoo Kang)의 <홍길동전> 번역과 그 해제이다.
노자키 교수는 89장본, 55장본, 동양문고본 등 세 개의 <홍길동전> 이본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상세한 해설을 붙였다. 노자키 교수는 이 책에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고 전해진다는 의미로 ‘傳許筠’이라고 했다. 강민수 교수는 2013년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Azalea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6집에 ‘Introduction to the Story of Hong Gildong’이라는 해제와 함께 ‘The Story of Hong Gildong(Pilsa 89 Version)’을 실었는데, 이 번역은 89장본을 완역하고 여기에 상당한 양의 주석을 붙인 것이다. 강민수 교수는 해제 및 본문 번역에서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될 수 없음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국외 연구자의 <홍길동전> 번역을 보면서 몇 가지 이본의 현대역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책을 내는 김에 그동안 쓴 논문 가운데 몇 편을 함께 싣기로 했다. 이 책이 <홍길동전> 연구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筆者長久以來一直指出學界關於《洪吉童傳》作者為許筠的通說有誤。然而,對於《洪吉童傳》作者的合理討論卻未能適當地展開。大多數古小說研究者認為,在目前已知多個版本的《洪吉童傳》中,沒有任何一個版本可以說是許筠所著。而且,即使他們懷疑許筠是否曾寫過韓文小說,卻也難以直接說韓文小說《洪吉童傳》的作者不是許筠。這種現象的背後,潛藏著一種想法,即為了韓國文學史,最好說許筠是《洪吉童傳》的作者。
《洪吉童傳》許筠創作說的根據,是1674年刊行之李植(1584~1647)的《澤堂集》中「許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一節。李植是文筆出眾、官位顯赫的人物,他的文集《澤堂集》在朝鮮後期多次刊行。在朝鮮後期,《澤堂集》是容易看到的書,許筠也是有名的人物,因此,「許筠作洪吉童傳」一節應被視為凡是讀過《澤堂集》的人大多都知道的內容。然而,朝鮮時代沒有任何人將《澤堂集》的這一節與韓文小說《洪吉童傳》聯繫起來思考或談論。
金泰俊在1930年東亞日報連載的《朝鮮小說史》中曾提及《洪吉童傳》的作者許筠。國文學界一直以來都認為這篇文章是首次提及《洪吉童傳》作者為許筠的言論。然而,京城帝國大學教授高橋亨在1927年他的論文《朝鮮文學研究—朝鮮的小說》中,曾引用《澤堂集》指出《洪吉童傳》的作者為許筠。在朝鮮時代,讀過《澤堂集》的許多人當中,沒有任何人指出韓文小說《洪吉童傳》的作者為許筠,而高橋卻將《澤堂集》中的「洪吉同傳」與韓文小說《洪吉童傳》連結起來,指出《洪吉童傳》的作者為許筠。在高橋提出《洪吉童傳》作者為許筠之後,他的京城帝國大學學生金泰俊、趙潤濟、金思燁等第一代韓國文學研究者,進一步深化了對「許筠所著《洪吉童傳》」的研究。在此基礎上,關於《洪吉童傳》的作者、主題、影響關係等多樣研究至今仍在持續。
《洪吉童傳》的形式和內容是19世紀流行的典型韓文小說。這部韓文小說的作者是與權力或兩班知識階層距離遙遠的無名市井人士。而閱讀和欣賞這些無名作家作品的讀者,也正是與作者屬於同一階層的人。1930年代殖民地知識分子渴望將《洪吉童傳》與許筠連結起來,以書寫光榮文學史的熱情,本身自有其意義。然而,現在似乎是時候將《洪吉童傳》歸還給其原本的作者和讀者,並揭示他們當時想說且說了什麼。我們不需要再繼續這種毫無意義的工作,即將韓文小說《洪吉童傳》的作者歸於許筠,並以許筠的思想來裁剪《洪吉童傳》。然而,要 제대로 完成這項工作,需要對《洪吉童傳》是如何產生以及如何流通的問題進行精密的研。
最近,筆者出版了方刻本《洪吉童傳》校註本(2014,延世大學大學出版文化院)。這本書除了京板30張本和完板36張本的現代語校註外,還收錄了比較異本內容的資料,以便了解京板本之間的縮寫樣貌。目前已知《洪吉童傳》方刻本有9種,包括京板5種、完板2種、安城板2種等,京板本和安城板本都是源自與京板30張本內容相同的異本,完板本則是36張本先於34張本。儘管方刻本內的相互關係可以清晰地掌握,但至今沒有人能說明方刻本的來源。然而,如果無法解決這個問題,就無法得知《洪吉童傳》的作者是誰,以及它是如何經歷各種過程形成多樣異本的。
方刻本小說的原稿從何而來?唯有明確回答這個問題,才能獲得解開古小說作者與流通問題的線索。古小說研究者所關注的方刻本雖然僅限於韓文古小說,但方刻本卻有多種形式,例如《南訓太平歌》等歌本、《大東輿地圖》或〈水仙全圖〉等地圖、《簡牘正要》或《事要聚選》等漢文教養書。我們必須將整個方刻本納入視野,而不僅僅是古小說方刻本,才能掌握方刻本的全貌。如此一來,一旦能夠大致掌握方刻本的全貌,我們便會發現方刻本並非原創作品,而是將先行存在的某物照搬或縮寫而成的。而這種方刻本的普遍特徵,也同樣適用於古小說方刻本。也就是說,方刻本小說是以先行存在的某物為底本,將其照搬或縮寫而成。此時,「先行存在的某物」可能是方刻本,也可能是手抄本,可能是外國書籍,也可能是朝鮮書籍。如果先行存在的某物是方刻本,則可以透過方刻本異本之間的內容比較來確認其譜系;如果不是方刻本,則需要調查多種異本才能找出其底本。為了找出京板《洪吉童傳》中最前端的30張本的來源,必須檢討多種手抄本異本。
方刻本是商業出版物,出版商為了利益而出版方刻本。因此,方刻本業者在出版任何書籍時,最重要考量標準就是能否獲利。方刻本業者將原有知名作品翻刻或縮寫出版的原因,是因為刊行流行作品在一定程度上能保證銷量。因此,對方刻本業者而言,了解當時讀者喜愛的流行作品是什麼非常重要。從18世紀中期開始,韓文小說以租書形式流行,19世紀前期,方刻本小說開始正式出現。由此可知,方刻本小說是將透過租書廣受歡迎的作品縮寫後出版的。《洪吉童傳》也不例外,最初是租書店製作並出租的書籍廣受歡迎後,其他租書店也抄寫並出租這本書,當縮寫租書的方刻本刊行後,又出現了多種翻刻或縮寫這本方刻本的方刻本。不僅京板方刻本,完板方刻本也是以首爾的租書為基礎製作的。只不過完板並非單純的縮寫,而是進行了相當程度的變異,成為改編水平的作品。
本書收錄了筆者過去針對這些問題發表的六篇論文,以及將四種手抄異本譯成現代語的內容。論文出處如下:
① 〈洪吉童傳作者論議之系譜〉,《烈上古典研究》第36輯,2012
② 〈洪吉童傳研究之問題〉,《古小說研究史》(月印,2002)
③ 〈京板洪吉童傳縮寫之樣態與其意義〉,《烈上古典研究》第40輯,2014
④ 〈關於洪吉童傳55張本之改作〉,《烈上古典研究》第13輯,2000
⑤ 〈東洋文庫本洪吉童傳研究〉,《東方學志》第99輯,1998
⑥ 〈關於洪吉童傳手抄本89張本〉,《愛山學報》第9輯,1990
簡單介紹這六篇論文的內容:
① 闡明了《洪吉童傳》作者最初並非金泰俊所言,而是金泰俊的老師高橋亨。並分析了殖民時期京城帝國大學教授高橋的這番言論,對其後產生的影響。此外,還檢討了為了「優秀」的韓國文學史,《洪吉童傳》作者不得不為許筠的狀況,並指出不再需要這種方式的《洪吉童傳》討論。
② 論述了現有《洪吉童傳》研究的問題點。指出《洪吉童傳》的分析未能脫離1930年代金泰俊的論述的現狀,並強調為理解《洪吉童傳》,有必要仔細閱讀多種異本。此外,還審視了過去作為作品解釋或解讀許筠思想依據的「西遊錄跋」的討論,發現從文本選取到解釋,該討論都極其粗疏。這篇文章揭示了現有《洪吉童傳》研究缺乏精確性。
③ 是一篇論文,透過比較京板(包括安城板)七種《洪吉童傳》異本的內容,闡明其中最早的是京板30張本,其餘六種則源自京板30張本。文中指出,京板30張本是根據租書(趙宗業本)縮寫而成。透過這些事實,我們可以得知《洪吉童傳》的作者是與租書店相關的人物,而京板小說則是將租書中受歡迎的作品縮寫而成的。在這篇論文中,筆者具體確認了租書店是古小說創作和流通的中心。
④ 中討論的55張本,是筆者至今所見30多種《洪吉童傳》異本中,內容最為特殊的一個版本。55張本的改編者在保留基本情節的基礎上,添加了許多讀者熟悉的故事情節,試圖創作一部更有趣的《洪吉童傳》。學界對《洪吉童傳》的分析,過去主要著重於思想層面,但這種作品解釋可能與《洪吉童傳》讀者的想法相去甚遠。即使不像55張本那樣變異幅度大,現存的所有異本都各有內容上的變異,因此研究者必須仔細思考如何解釋這些內容上的變異。這篇論文指出有必要對《洪吉童傳》的各種異本進行檢討。
⑤ 這篇文章探討了日本東洋文庫收藏的三卷三冊手抄本異本。東洋文庫收藏了約300多冊1900年左右在首爾流通的租書,這約佔目前現存租書古小說總量的一半。《洪吉童傳》也是這些租書之一。東洋文庫本的第二卷까지 與京板30張本的文字幾乎一致,但第三卷的律島國部分卻比京板30張本大幅擴充。在筆者撰寫這篇論文的時候(1998年),對租書還沒有深入的理解,因此,這篇論文僅止於強調在《洪吉童傳》研究中需要進行租書研究。
⑥ 是一篇論文,旨在為1980年代以前學界《洪吉童傳》研究的陳腐性注入新活力,選取了手抄本中被認為重要的89張本進行探討。在撰寫這篇論文的1990年,筆者所探討的手抄本異本僅有五種,因此只能說89張本先於京板30張本。然而,此後透過與趙宗業教授藏本租書的內容比較,得以揭示89張本與趙宗業本屬於同一系列。
① 和 ② 闡明了現有《洪吉童傳》研究中存在的問題。儘管筆者在1997年出版的《洪吉童傳研究》中已大都論及這些問題,但由於首次指出《洪吉童傳》作者為許筠者是日本人且時間為1927年,這一事實是首次在 ① 中提及,故收錄於本書;而 ② 則為了揭示將《洪吉童傳》與許筠連結討論時,研究者所引用的資料存在何種問題而收錄。其餘 ③~⑥ 則是關於本書所收錄的四種手抄異本的論文。
本書所收錄的四種手抄異本,在《洪吉童傳》異本中佔有重要地位。簡介這四種異本如下:
㉮ 89張本:目前收藏於檀國大學栗谷圖書館。透過網路提供原文服務,可瀏覽原文。
㉯ 55張本:此異本亦收藏於檀國大學栗谷圖書館,並透過網路提供原文服務。
㉰ 東洋文庫本:為1911年首爾社稷洞租書店製作之租書。其特色為律島國部分極長。可透過高麗大學海外韓國學資料中心網路瀏覽原文。
㱁 趙宗業本:目前收藏於忠南大學圖書館。僅存第1、2卷兩冊,推測全套為四卷四冊。與東洋文庫本同樣是租書本,但形式和內容都與東洋文庫本不同。
除趙宗業本之外,其餘三種版本皆可透過網路瀏覽原版圖片,免去親臨收藏處確認原文的麻煩。趙宗業本目前尚無透過網路瀏覽原文的方式,因此必須前往忠南大學圖書館才能看到原文。89張本、55張本、東洋文庫本皆將作品全文翻譯成現代韓語,並在認為必要之處以括號加註漢字並附上註釋,而趙宗業本則以與前三種異本不同的方式呈現現代語翻譯。
趙宗業本是京板本的底本租書。這意味著目前已知的《洪吉童傳》京板異本,是將與趙宗業本內容相同的租書縮寫而成的。關於這個問題,論文②中有詳細討論。本書為了清楚地呈現趙宗業本與京板本的關係,同時呈現了趙宗業本的全文和京板30張本的相應部分。如此將兩個版本並置,便可一目了然京板本以租書為底本進行縮寫的樣貌。
儘管受過現代學術訓練的研究者們研究古小說已逾80年,但在古小說研究初期未能解決的問題中,仍有許多停滯不前。其中最具代表性的問題是韓文小說的作者是誰、為何創作以及如何流通。《洪吉童傳》也不例外。仍偶爾可見將《洪吉童傳》作者歸於許筠,或以已被證實為縮寫本的京板24張本作為作品分析底本的研究,這都顯示《洪吉童傳》的討論在80年前並未取得重大進展。
關於韓文古小說的作者與流通研究,唯有以租書、方刻本、活字本的理解為基礎,並堅持古小說為當代通俗文藝品的觀點,才能真正掌握正確的方向。在朝鮮時代韓文小說的創作與流通中心是租書店。小說在租書店中創作,並透過將這些小說出租的業務擴展到首爾各地,使小說成為通俗文藝品。隨後,在租書中廣受讀者歡迎的作品中,將可縮寫成一兩冊的篇幅製作成木刻本的方刻本出現,朝鮮小說才得以以印刷形式流通。如此一來,原本僅在首爾製作和流通的小說,也在全州和安城以方刻本的形式刊行,小說的領域隨之擴大。直到20世紀初,首爾的租書店仍在營業,京板方刻本也在銷售,但隨著報紙、雜誌等新文物的讀物,以及新小說和各種傳記的出現,古小說不再創作新作品。然而,在全州和安城,方刻本小說卻持續刊行。進入1910年代,古小說迎來了新時代,大量廉價的活字印刷古小說,即所謂的「딱지본소설」(硬殼小說),開始普及。這些活字本古小說的刊行,才使得古小說得以在全國範圍內流通。
《洪吉童傳》是應該在上述古小說一般創作與流通的路徑中理解的作品,而不是需要以其他方式理解的特殊作品。未來,《洪吉吉傳》研究的重要課題之一,將是仔細檢討該作品在古典文學研究中特別受到關注的原因及其過程。揭示古小說研究初期將許筠誤認為《洪吉吉傳》作者的錯誤主張為何能持續這麼長時間,也是古小說研究的重要課題。
筆者曾在1997年出版《洪吉童傳研究》(啟明大學出版社)時,以附錄形式公開了包含11種異本原文和兩種現代語譯共13個檔案的磁片。然而,這些公開的資料在學術界似乎很少被使用。除了現有著名的京板本和完板本之外,似乎很少有研究者以其他資料為基礎撰寫關於《洪吉童傳》的論文。筆者所公開的資料,有兩項國外研究者的成果。一是日本大阪市立大學教授野崎充彥所著的《洪吉童傳》(平凡社,2010),另一是美國密蘇里大學(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歷史系教授姜珉洙(Minsoo Kang)的《洪吉童傳》譯本及其解說。
野崎教授將89張本、55張本、東洋文庫本等三種《洪吉童傳》異本翻譯成日文,並附上詳細的解說。野崎教授在書中以「傳許筠」表示《洪吉童傳》的作者傳說是許筠。姜珉洙教授在2013年哈佛大學韓國學研究所出版的《Azalea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第6輯中,刊載了題為〈Introduction to the Story of Hong Gildong〉的解說,以及〈The Story of Hong Gildong (Pilsa 89 Version)〉。這篇譯文是89張本的完整譯本,並附有大量的註釋。姜珉洙教授在解說及正文翻譯中,詳細解釋了《洪吉童傳》的作者不可能是許筠。
看到國外研究者翻譯《洪吉童傳》,我便產生了翻譯幾個異本的現代譯文的想法,並趁著出書之際,決定將過去寫的幾篇論文一併收錄。希望這本書能對《洪吉童傳》的研究有所助益。
<홍길동전> 허균 창작설의 근거는, 1674년에 간행된 이식(李植, 1584~1647)의 『택당집(澤堂集)』에 “허균은 수호전을 흉내 내 홍길동전을 지었다(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는 구절이다. 이식은 뛰어난 문장가로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고, 그의 문집 『택당집』은 조선후기에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조선후기에 『택당집』은 쉽게 볼 수 있는 책이었고 허균도 유명한 인물이었으므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구절은 『택당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어느 누구도 『택당집』의 이 구절을 한글소설 <홍길동전>과 연결시켜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김태준은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소설사’에서 <홍길동전>의 작자 허균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다. 그동안 국문학계에서는 이 글이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한 첫 번째 발언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는 1927년 그의 논문 「조선문학 연구-조선의 소설」에서 『택당집』을 인용하여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선시대 『택당집』을 읽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다카하시는 『택당집』의 ‘洪吉同傳’과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연결시켜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했다. 다카하시가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얘기한 후, 그의 경성제국대학 제자인 김태준, 조윤제, 김사엽 등 1세대 한국문학 연구자들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나갔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홍길동전>의 작자, 주제, 영향관계 등등의 다양한 연구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홍길동전>은 그 형식과 내용이 19세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한글소설이다. 이 한글소설의 작자는 권력이나 양반지식층과는 거리가 먼 무명의 시정인이다. 그리고 이들 무명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즐긴 독자들도 바로 작가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홍길동전>을 허균과 연결시켜 영광스러운 문학사를 서술하고 싶어 했던 1930년대 식민지 지식인의 열정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홍길동전>을 원래 작자와 독자에게 돌려주고, 그들이 얘기하고 싶어 했고 또 얘기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하면서 허균의 생각으로 <홍길동전>을 재단하는 무의미한 일을 더 이상 계속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홍길동전>은 누가 만들었고, 또 어떻게 유통되었나 하는 문제에 대한 정치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필자는 방각본 <홍길동전> 교주본(2014,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을 냈다. 이 책에는 경판 30장본과 완판 36장본의 현대어 교주와 함께 경판본 사이의 축약 양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이본의 내용을 비교한 자료도 실었다. <홍길동전> 방각본은 경판 5종, 완판 2종, 안성판 2종 등으로 현재 9종이 알려져 있는데, 경판본과 안성판본은 모두 경판 30장본과 같은 내용의 이본에서 나온 것이고, 완판본은 36장본이 34장본에 선행한다. 이처럼 방각본 내의 상호관계는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으나, 방각본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아무도 얘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누가 <홍길동전>을 썼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다양한 이본이 만들어졌는가를 알아낼 길이 없다.
방각본 소설의 원고는 어디서 왔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고소설의 작자와 유통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고소설 연구자들이 바라보는 방각본은 한글 고소설뿐이지만, 방각본에는 『남훈태평가』 같은 노래책, 『대동여지도』나 「수선전도」 같은 지도, 『간독정요』나 『사요취선』과 같은 한문 교양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방각본 고소설만이 아닌 방각본 전체를 시야에 넣고 바라보아야 전체적인 방각본의 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방각본 전체상을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게 되면, 방각본은 창작물이 아니라 선행하는 어떤 것을 그대로 옮기거나 축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각본의 일반적 특징은 고소설 방각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방각본 소설은 선행하는 어떤 것을 저본으로 그것을 그대로 옮기거나 또는 축약한 것이다. 이때 ‘선행하는 어떤 것’이란 방각본일 수도 있고 필사본일 수도 있으며, 외국책일 수도 있고 조선 책일 수도 있다. 선행하는 어떤 것이 방각본일 경우는 방각본 이본 사이의 내용비교를 통해 그 계보를 확인할 수 있으나, 방각본이 아닐 경우에는 그 저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본을 조사해야만 한다. 경판 <홍길동전> 가운데 가장 앞선 30장본의 원천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필사본 이본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각본은 상업출판물이고, 출판업자는 이익을 위해서 방각본을 출판한다. 그러므로 방각본 업자가 어떤 책을 출판할 때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익을 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이다. 방각본 업자가 기존에 잘 알려진 것을 번각(飜刻)하거나 축약해서 출판하는 이유는, 유행하는 작품을 간행하면 어느 정도 판매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각본 업자로서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작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18세기 중반부터 한글소설은 세책으로 유행하게 되고, 19세기 전반에 방각본 소설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방각본 소설은 세책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을 축약해서 출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홍길동전>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초에 세책집에서 만들어서 빌려주던 책이 인기를 끌게 되자 다른 세책집에서도 이 책을 베껴서 빌려주고, 또 세책을 축약한 방각본이 간행되자 이 방각본을 번각하거나 축약한 여러 종의 방각본이 나오게 된 것이다. 경판 방각본만이 아니라 완판 방각본도 서울의 세책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다만 완판은 단순한 축약이 아니라 상당한 변이가 이루어져서 개작 수준의 작품이 되었다.
이 책에는 필자가 그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서 발표한 여섯 편의 논문과 네 종의 필사본 이본을 현대어로 옮긴 것을 실었다. 논문의 출처는 아래와 같다.
① 「홍길동전 작자 논의의 계보」, 『열상고전연구』 36집 , 2012
② 「홍길동전 연구의 문제」, 『고소설연구사』(월인, 2002)
③ 「경판 홍길동전 축약의 양상과 그 의미」, 『열상고전연구』 40집 , 2014
④ 「홍길동전 55장본 개작에 대하여」, 『열상고전연구』 13집 , 2000
⑤ 「동양문고본 홍길동전 연구」, 『동방학지』 99집 , 1998
⑥ 「홍길동전 필사본 89장본에 대하여」, 『애산학보』 9집 , 1990
여섯 편의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①은 <홍길동전> 작자를 허균이라고 처음 얘기한 사람이 김태준이 아니라 김태준의 스승인 다카하시 토오루라는 것을 밝힌 글이다. 그리고 식민지시기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의 이 발언이 그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했다. 또 ‘훌륭한’ 한국문학사를 위해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검토하고, 더 이상 이런 식의 <홍길동전>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얘기했다.
②는 기존 <홍길동전> 연구의 문제점을 얘기한 글이다. <홍길동전> 분석이 1930년대 김태준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홍길동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본을 정치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음을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작품 해석이나 허균의 생각을 읽어내는 근거로 이용해온 「서유록발(西遊錄跋)」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는데, 「서유록발」의 텍스트 선정에서부터 해석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가 매우 허술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기존의 <홍길동전> 연구가 정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③은 경판(안성판 포함) 7종의 <홍길동전> 이본의 내용을 비교하여, 이 가운데 가장 앞선 것은 경판 30장본이고, 나머지 6종은 경판 30장본에서 파생된 것임을 밝힌 논문이다. 이 글에서 경판 30장본은 세책(조종업본)을 저본으로 축약한 것임을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홍길동전>의 작자는 세책집과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이며, 세책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을 축약해서 만든 것이 경판 소설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세책집이 고소설의 창작과 유통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④에서 다룬 55장본은 현재까지 필자가 본 30여 종의 <홍길동전> 이본 가운데 가장 특이한 내용을 갖고 있는 이본이다. 55장본의 개작자는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둔 채 여기에 독자들에게 익숙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서 더 재미있는 <홍길동전>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그간 학계의 <홍길동전> 분석은 주로 이념적인 것이었는데, 이러한 작품 해석은 <홍길동전>을 읽던 독자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비단 55장본처럼 그 변이의 폭이 크지 않더라도 현존하는 모든 이본은 각기 내용상의 변이를 갖고 있으므로, 연구자는 이 내용상의 변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논문은 <홍길동전>의 다양한 이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얘기한 것이다.
⑤는 일본 동양문고에 소장된 3권 3책의 필사본 이본을 다룬 글이다. 동양문고에는 1900년 무렵 서울에서 유통되던 세책 약 300여 책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남아 있는 세책 고소설 총량의 반 정도 되는 숫자이다. <홍길동전>도 이 세책 가운데 하나이다. 동양문고본 제2권까지는 경판 30장본과 거의 자구가 일치하는데, 제3권의 율도국 대목은 경판 30장본에 비해 매우 확장되었다. 필자가 이 논문을 쓸 무렵(1998년)에는 아직 세책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홍길동전> 연구에서 세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정도에 그쳤다.
⑥은 1980년대까지 경판과 완판에 집중되어 있는 학계의 <홍길동전> 연구의 진부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필사본 가운데 중요한 이본으로 판단한 89장본을 다룬 논문이다. 이 논문을 쓰던 1990년에 필자가 다룬 필사본 이본은 다섯 종에 불과했으므로, 89장본이 경판 30장본에 선행한다는 정도까지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조종업 교수 소장본 세책과 내용 비교를 통해 89장본은 조종업본과 같은 계열임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①과 ②는 기존의 <홍길동전> 연구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점을 밝힌 글이다. 이미 1997년에 간행한 필자의 『홍길동전 연구』에서 이런 문제는 대부분 얘기한 것이지만,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일본인이고, 그 시기가 1927년이라는 사실은 ①에서 처음 얘기한 것이므로 이 책에 실었고, ②는 <홍길동전>과 허균을 연결시켜 논의할 때 연구자들이 인용한 자료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실었다. 나머지③~⑥은 이 책에 실은 네 개의 필사본 이본에 관한 논문이다.
이 책에 실은 네 개의 필사본 이본은 <홍길동전> 이본 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본이다. 네 이본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89장본 : 현재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원문 서비스를 하므로 원문을 볼 수 있다.
㉯ 55장본 : 이 이본도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서 원문 서비스를 한다.
㉰ 동양문고본 : 1911년 서울 사직동 세책집에서 제작한 세책이다. 율도국 대목이 매우 길다는 특징이 있다.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원문을 볼 수 있다.
㉱ 조종업본 : 현재 충남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1, 2권 두 책만 남아 있는데, 전체는 4권 4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양문고본과 마찬가지로 세책본이지만, 동양문고본과는 형식과 내용 모두가 다르다.
조종업본 이외의 나머지 3종은 인터넷을 통해 원본의 이미지를 볼 수 있으므로 원문을 확인하러 소장처를 가야만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조종업본은 아직까지는 인터넷을 통해 원문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충남대학교 도서관을 가야만 원문을 볼 수 있다. 89장본, 55장본, 동양문고본은 각기 작품 전체를 현대어로 옮기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곳에 괄호 안에 한자를 넣고 주석을 붙였고, 조종업본은 앞의 세 이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어역을 제시했다.
조종업본은 경판본의 저본이 된 세책이다. 이 말은 현재 알려진 <홍길동전> 경판 이본은 조종업본과 같은 내용의 세책을 축약해서 만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문 ②에서 자세히 논의했다. 이 책에서는 조종업본과 경판본의 관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조종업본의 전문과 경판 30장본의 해당 부분을 함께 제시했다. 이렇게 두 본을 같이 놓고 보면, 경판본이 세책을 저본으로 축약한 양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근대적인 학문 훈련을 받은 연구자들이 고소설 연구를 시작한 지 80년이 넘었으나, 고소설 연구 초기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 가운데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한글소설은 누가 왜 썼으며, 어떻게 유통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홍길동전>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한다거나, 이미 축약본임이 밝혀진 경판 24장본을 작품 분석의 대본으로 쓰는 연구가 아직도 간간이 보이는 것은 <홍길동전>의 논의가 80년 전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글 고소설의 작자와 유통에 관한 연구는, 세책과 방각본 그리고 활판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소설이 당대 통속문예물이라는 관점을 견지할 때 비로소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글소설의 창작과 유통의 중심에는 세책집이 있다. 세책집에서 소설의 창작이 이루어지고, 이 소설을 빌려주는 영업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소설이 통속문예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 세책으로 독자들의 인기를 끈 작품 가운데 한두 권으로 축약할 수 있는 분량의 작품을 목판본으로 제작한 방각본이 나오면서 비로소 조선의 소설은 인쇄된 형태로 유통되게 된다. 이렇게 서울에서만 제작되고 유통되던 소설이 전주와 안성에서도 방각본으로 간행되면서 소설은 그 영역을 넓혀간다. 20세기 초까지 서울에서는 세책집이 계속 영업을 했고 경판 방각본도 팔리고 있었으나, 새로운 문물인 신문이나 잡지 등의 읽을거리와 신소설이나 여러 가지 전기물이 나타나면서 고소설은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지는 않게 된다. 그러나 전주나 안성에서는 방각본 소설이 계속 간행되었다.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소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활판인쇄로 고소설을 인쇄한 소위 ‘딱지본소설’이 대량으로 싼값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활판본 고소설의 간행으로 비로소 고소설은 전국적인 유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홍길동전>은 이와 같은 고소설의 일반적인 창작과 유통의 경로 속에서 이해해야하는 작품이지 다른 방식의 이해가 필요한 특별한 작품은 아니다. 앞으로 <홍길동전> 연구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고전문학 연구에서 이 작품이 특별히 관심을 끌게 된 이유와 그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이 될 것이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는 고소설 연구 초기의 잘못된 주장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 또한 고소설 연구의 중요한 과제이다.
필자는 1997년에 『홍길동전 연구』(계명대학교 출판부)를 내면서 부록으로 11종의 이본 원문과 두 종의 현대어역 등 전체 13개의 파일을 담은 디스켓을 공개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한 자료가 학계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잘 알려진 경판본과 완판본 이외의 자료를 바탕으로 <홍길동전>에 관한 논문을 쓴 연구자는 아직까지 별로 없는 것 같다. 필자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외의 연구자가 낸 성과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일본 오사카[大阪]시립대학 교수 노자키 미쯔히코[野崎充彦]가 낸 『洪吉童伝』(平凡社, 2010)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미주리대학(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 역사학과 교수 강민수(Minsoo Kang)의 <홍길동전> 번역과 그 해제이다.
노자키 교수는 89장본, 55장본, 동양문고본 등 세 개의 <홍길동전> 이본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상세한 해설을 붙였다. 노자키 교수는 이 책에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고 전해진다는 의미로 ‘傳許筠’이라고 했다. 강민수 교수는 2013년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Azalea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6집에 ‘Introduction to the Story of Hong Gildong’이라는 해제와 함께 ‘The Story of Hong Gildong(Pilsa 89 Version)’을 실었는데, 이 번역은 89장본을 완역하고 여기에 상당한 양의 주석을 붙인 것이다. 강민수 교수는 해제 및 본문 번역에서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될 수 없음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국외 연구자의 <홍길동전> 번역을 보면서 몇 가지 이본의 현대역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책을 내는 김에 그동안 쓴 논문 가운데 몇 편을 함께 싣기로 했다. 이 책이 <홍길동전> 연구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筆者長久以來一直指出學界關於《洪吉童傳》作者為許筠的通說有誤。然而,對於《洪吉童傳》作者的合理討論卻未能適當地展開。大多數古小說研究者認為,在目前已知多個版本的《洪吉童傳》中,沒有任何一個版本可以說是許筠所著。而且,即使他們懷疑許筠是否曾寫過韓文小說,卻也難以直接說韓文小說《洪吉童傳》的作者不是許筠。這種現象的背後,潛藏著一種想法,即為了韓國文學史,最好說許筠是《洪吉童傳》的作者。
《洪吉童傳》許筠創作說的根據,是1674年刊行之李植(1584~1647)的《澤堂集》中「許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一節。李植是文筆出眾、官位顯赫的人物,他的文集《澤堂集》在朝鮮後期多次刊行。在朝鮮後期,《澤堂集》是容易看到的書,許筠也是有名的人物,因此,「許筠作洪吉童傳」一節應被視為凡是讀過《澤堂集》的人大多都知道的內容。然而,朝鮮時代沒有任何人將《澤堂集》的這一節與韓文小說《洪吉童傳》聯繫起來思考或談論。
金泰俊在1930年東亞日報連載的《朝鮮小說史》中曾提及《洪吉童傳》的作者許筠。國文學界一直以來都認為這篇文章是首次提及《洪吉童傳》作者為許筠的言論。然而,京城帝國大學教授高橋亨在1927年他的論文《朝鮮文學研究—朝鮮的小說》中,曾引用《澤堂集》指出《洪吉童傳》的作者為許筠。在朝鮮時代,讀過《澤堂集》的許多人當中,沒有任何人指出韓文小說《洪吉童傳》的作者為許筠,而高橋卻將《澤堂集》中的「洪吉同傳」與韓文小說《洪吉童傳》連結起來,指出《洪吉童傳》的作者為許筠。在高橋提出《洪吉童傳》作者為許筠之後,他的京城帝國大學學生金泰俊、趙潤濟、金思燁等第一代韓國文學研究者,進一步深化了對「許筠所著《洪吉童傳》」的研究。在此基礎上,關於《洪吉童傳》的作者、主題、影響關係等多樣研究至今仍在持續。
《洪吉童傳》的形式和內容是19世紀流行的典型韓文小說。這部韓文小說的作者是與權力或兩班知識階層距離遙遠的無名市井人士。而閱讀和欣賞這些無名作家作品的讀者,也正是與作者屬於同一階層的人。1930年代殖民地知識分子渴望將《洪吉童傳》與許筠連結起來,以書寫光榮文學史的熱情,本身自有其意義。然而,現在似乎是時候將《洪吉童傳》歸還給其原本的作者和讀者,並揭示他們當時想說且說了什麼。我們不需要再繼續這種毫無意義的工作,即將韓文小說《洪吉童傳》的作者歸於許筠,並以許筠的思想來裁剪《洪吉童傳》。然而,要 제대로 完成這項工作,需要對《洪吉童傳》是如何產生以及如何流通的問題進行精密的研。
最近,筆者出版了方刻本《洪吉童傳》校註本(2014,延世大學大學出版文化院)。這本書除了京板30張本和完板36張本的現代語校註外,還收錄了比較異本內容的資料,以便了解京板本之間的縮寫樣貌。目前已知《洪吉童傳》方刻本有9種,包括京板5種、完板2種、安城板2種等,京板本和安城板本都是源自與京板30張本內容相同的異本,完板本則是36張本先於34張本。儘管方刻本內的相互關係可以清晰地掌握,但至今沒有人能說明方刻本的來源。然而,如果無法解決這個問題,就無法得知《洪吉童傳》的作者是誰,以及它是如何經歷各種過程形成多樣異本的。
方刻本小說的原稿從何而來?唯有明確回答這個問題,才能獲得解開古小說作者與流通問題的線索。古小說研究者所關注的方刻本雖然僅限於韓文古小說,但方刻本卻有多種形式,例如《南訓太平歌》等歌本、《大東輿地圖》或〈水仙全圖〉等地圖、《簡牘正要》或《事要聚選》等漢文教養書。我們必須將整個方刻本納入視野,而不僅僅是古小說方刻本,才能掌握方刻本的全貌。如此一來,一旦能夠大致掌握方刻本的全貌,我們便會發現方刻本並非原創作品,而是將先行存在的某物照搬或縮寫而成的。而這種方刻本的普遍特徵,也同樣適用於古小說方刻本。也就是說,方刻本小說是以先行存在的某物為底本,將其照搬或縮寫而成。此時,「先行存在的某物」可能是方刻本,也可能是手抄本,可能是外國書籍,也可能是朝鮮書籍。如果先行存在的某物是方刻本,則可以透過方刻本異本之間的內容比較來確認其譜系;如果不是方刻本,則需要調查多種異本才能找出其底本。為了找出京板《洪吉童傳》中最前端的30張本的來源,必須檢討多種手抄本異本。
方刻本是商業出版物,出版商為了利益而出版方刻本。因此,方刻本業者在出版任何書籍時,最重要考量標準就是能否獲利。方刻本業者將原有知名作品翻刻或縮寫出版的原因,是因為刊行流行作品在一定程度上能保證銷量。因此,對方刻本業者而言,了解當時讀者喜愛的流行作品是什麼非常重要。從18世紀中期開始,韓文小說以租書形式流行,19世紀前期,方刻本小說開始正式出現。由此可知,方刻本小說是將透過租書廣受歡迎的作品縮寫後出版的。《洪吉童傳》也不例外,最初是租書店製作並出租的書籍廣受歡迎後,其他租書店也抄寫並出租這本書,當縮寫租書的方刻本刊行後,又出現了多種翻刻或縮寫這本方刻本的方刻本。不僅京板方刻本,完板方刻本也是以首爾的租書為基礎製作的。只不過完板並非單純的縮寫,而是進行了相當程度的變異,成為改編水平的作品。
本書收錄了筆者過去針對這些問題發表的六篇論文,以及將四種手抄異本譯成現代語的內容。論文出處如下:
① 〈洪吉童傳作者論議之系譜〉,《烈上古典研究》第36輯,2012
② 〈洪吉童傳研究之問題〉,《古小說研究史》(月印,2002)
③ 〈京板洪吉童傳縮寫之樣態與其意義〉,《烈上古典研究》第40輯,2014
④ 〈關於洪吉童傳55張本之改作〉,《烈上古典研究》第13輯,2000
⑤ 〈東洋文庫本洪吉童傳研究〉,《東方學志》第99輯,1998
⑥ 〈關於洪吉童傳手抄本89張本〉,《愛山學報》第9輯,1990
簡單介紹這六篇論文的內容:
① 闡明了《洪吉童傳》作者最初並非金泰俊所言,而是金泰俊的老師高橋亨。並分析了殖民時期京城帝國大學教授高橋的這番言論,對其後產生的影響。此外,還檢討了為了「優秀」的韓國文學史,《洪吉童傳》作者不得不為許筠的狀況,並指出不再需要這種方式的《洪吉童傳》討論。
② 論述了現有《洪吉童傳》研究的問題點。指出《洪吉童傳》的分析未能脫離1930年代金泰俊的論述的現狀,並強調為理解《洪吉童傳》,有必要仔細閱讀多種異本。此外,還審視了過去作為作品解釋或解讀許筠思想依據的「西遊錄跋」的討論,發現從文本選取到解釋,該討論都極其粗疏。這篇文章揭示了現有《洪吉童傳》研究缺乏精確性。
③ 是一篇論文,透過比較京板(包括安城板)七種《洪吉童傳》異本的內容,闡明其中最早的是京板30張本,其餘六種則源自京板30張本。文中指出,京板30張本是根據租書(趙宗業本)縮寫而成。透過這些事實,我們可以得知《洪吉童傳》的作者是與租書店相關的人物,而京板小說則是將租書中受歡迎的作品縮寫而成的。在這篇論文中,筆者具體確認了租書店是古小說創作和流通的中心。
④ 中討論的55張本,是筆者至今所見30多種《洪吉童傳》異本中,內容最為特殊的一個版本。55張本的改編者在保留基本情節的基礎上,添加了許多讀者熟悉的故事情節,試圖創作一部更有趣的《洪吉童傳》。學界對《洪吉童傳》的分析,過去主要著重於思想層面,但這種作品解釋可能與《洪吉童傳》讀者的想法相去甚遠。即使不像55張本那樣變異幅度大,現存的所有異本都各有內容上的變異,因此研究者必須仔細思考如何解釋這些內容上的變異。這篇論文指出有必要對《洪吉童傳》的各種異本進行檢討。
⑤ 這篇文章探討了日本東洋文庫收藏的三卷三冊手抄本異本。東洋文庫收藏了約300多冊1900年左右在首爾流通的租書,這約佔目前現存租書古小說總量的一半。《洪吉童傳》也是這些租書之一。東洋文庫本的第二卷까지 與京板30張本的文字幾乎一致,但第三卷的律島國部分卻比京板30張本大幅擴充。在筆者撰寫這篇論文的時候(1998年),對租書還沒有深入的理解,因此,這篇論文僅止於強調在《洪吉童傳》研究中需要進行租書研究。
⑥ 是一篇論文,旨在為1980年代以前學界《洪吉童傳》研究的陳腐性注入新活力,選取了手抄本中被認為重要的89張本進行探討。在撰寫這篇論文的1990年,筆者所探討的手抄本異本僅有五種,因此只能說89張本先於京板30張本。然而,此後透過與趙宗業教授藏本租書的內容比較,得以揭示89張本與趙宗業本屬於同一系列。
① 和 ② 闡明了現有《洪吉童傳》研究中存在的問題。儘管筆者在1997年出版的《洪吉童傳研究》中已大都論及這些問題,但由於首次指出《洪吉童傳》作者為許筠者是日本人且時間為1927年,這一事實是首次在 ① 中提及,故收錄於本書;而 ② 則為了揭示將《洪吉童傳》與許筠連結討論時,研究者所引用的資料存在何種問題而收錄。其餘 ③~⑥ 則是關於本書所收錄的四種手抄異本的論文。
本書所收錄的四種手抄異本,在《洪吉童傳》異本中佔有重要地位。簡介這四種異本如下:
㉮ 89張本:目前收藏於檀國大學栗谷圖書館。透過網路提供原文服務,可瀏覽原文。
㉯ 55張本:此異本亦收藏於檀國大學栗谷圖書館,並透過網路提供原文服務。
㉰ 東洋文庫本:為1911年首爾社稷洞租書店製作之租書。其特色為律島國部分極長。可透過高麗大學海外韓國學資料中心網路瀏覽原文。
㱁 趙宗業本:目前收藏於忠南大學圖書館。僅存第1、2卷兩冊,推測全套為四卷四冊。與東洋文庫本同樣是租書本,但形式和內容都與東洋文庫本不同。
除趙宗業本之外,其餘三種版本皆可透過網路瀏覽原版圖片,免去親臨收藏處確認原文的麻煩。趙宗業本目前尚無透過網路瀏覽原文的方式,因此必須前往忠南大學圖書館才能看到原文。89張本、55張本、東洋文庫本皆將作品全文翻譯成現代韓語,並在認為必要之處以括號加註漢字並附上註釋,而趙宗業本則以與前三種異本不同的方式呈現現代語翻譯。
趙宗業本是京板本的底本租書。這意味著目前已知的《洪吉童傳》京板異本,是將與趙宗業本內容相同的租書縮寫而成的。關於這個問題,論文②中有詳細討論。本書為了清楚地呈現趙宗業本與京板本的關係,同時呈現了趙宗業本的全文和京板30張本的相應部分。如此將兩個版本並置,便可一目了然京板本以租書為底本進行縮寫的樣貌。
儘管受過現代學術訓練的研究者們研究古小說已逾80年,但在古小說研究初期未能解決的問題中,仍有許多停滯不前。其中最具代表性的問題是韓文小說的作者是誰、為何創作以及如何流通。《洪吉童傳》也不例外。仍偶爾可見將《洪吉童傳》作者歸於許筠,或以已被證實為縮寫本的京板24張本作為作品分析底本的研究,這都顯示《洪吉童傳》的討論在80年前並未取得重大進展。
關於韓文古小說的作者與流通研究,唯有以租書、方刻本、活字本的理解為基礎,並堅持古小說為當代通俗文藝品的觀點,才能真正掌握正確的方向。在朝鮮時代韓文小說的創作與流通中心是租書店。小說在租書店中創作,並透過將這些小說出租的業務擴展到首爾各地,使小說成為通俗文藝品。隨後,在租書中廣受讀者歡迎的作品中,將可縮寫成一兩冊的篇幅製作成木刻本的方刻本出現,朝鮮小說才得以以印刷形式流通。如此一來,原本僅在首爾製作和流通的小說,也在全州和安城以方刻本的形式刊行,小說的領域隨之擴大。直到20世紀初,首爾的租書店仍在營業,京板方刻本也在銷售,但隨著報紙、雜誌等新文物的讀物,以及新小說和各種傳記的出現,古小說不再創作新作品。然而,在全州和安城,方刻本小說卻持續刊行。進入1910年代,古小說迎來了新時代,大量廉價的活字印刷古小說,即所謂的「딱지본소설」(硬殼小說),開始普及。這些活字本古小說的刊行,才使得古小說得以在全國範圍內流通。
《洪吉童傳》是應該在上述古小說一般創作與流通的路徑中理解的作品,而不是需要以其他方式理解的特殊作品。未來,《洪吉吉傳》研究的重要課題之一,將是仔細檢討該作品在古典文學研究中特別受到關注的原因及其過程。揭示古小說研究初期將許筠誤認為《洪吉吉傳》作者的錯誤主張為何能持續這麼長時間,也是古小說研究的重要課題。
筆者曾在1997年出版《洪吉童傳研究》(啟明大學出版社)時,以附錄形式公開了包含11種異本原文和兩種現代語譯共13個檔案的磁片。然而,這些公開的資料在學術界似乎很少被使用。除了現有著名的京板本和完板本之外,似乎很少有研究者以其他資料為基礎撰寫關於《洪吉童傳》的論文。筆者所公開的資料,有兩項國外研究者的成果。一是日本大阪市立大學教授野崎充彥所著的《洪吉童傳》(平凡社,2010),另一是美國密蘇里大學(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歷史系教授姜珉洙(Minsoo Kang)的《洪吉童傳》譯本及其解說。
野崎教授將89張本、55張本、東洋文庫本等三種《洪吉童傳》異本翻譯成日文,並附上詳細的解說。野崎教授在書中以「傳許筠」表示《洪吉童傳》的作者傳說是許筠。姜珉洙教授在2013年哈佛大學韓國學研究所出版的《Azalea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第6輯中,刊載了題為〈Introduction to the Story of Hong Gildong〉的解說,以及〈The Story of Hong Gildong (Pilsa 89 Version)〉。這篇譯文是89張本的完整譯本,並附有大量的註釋。姜珉洙教授在解說及正文翻譯中,詳細解釋了《洪吉童傳》的作者不可能是許筠。
看到國外研究者翻譯《洪吉童傳》,我便產生了翻譯幾個異本的現代譯文的想法,並趁著出書之際,決定將過去寫的幾篇論文一併收錄。希望這本書能對《洪吉童傳》的研究有所助益。
- 出版地 : 韓國
- 語言 : 其他語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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